그 분들이 행복하게 지내게 하여지이다
by metta
1989 노벨평화상 강의 / 제 14대 달라이 라마
글 작성일: 2008.4.3.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노벨평화상 강의도 옮겨 봤습니다. 크게는 수락 연설문과 같은 맥락인데, 존자님의 주장이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진리의 실천에 대한 개인적 실험의 기록이라는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비폭력과 평화는 그렇지 않은 현실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가" 라는 부분에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지요. 아무리 고귀한 정신이라도 후세에게 전해지는 교훈으로만 남는다면 그건 좀 곤란한 일이라 생각했거든요. 헌데 이즈음엔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국가와 인종을 내세우기 전에 우리가 하나의 보편 인류라고 보면, 현재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도 우리의 삶으로 포괄시켜 보면, 현실적으로는 한심하기까지 한 누군가의 그 전략이 우리에겐 더 큰 감사가 될 수도 있을거라구요.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인류에 대한 위대한 스승의 마음이, 이런게 아닐까 짐작만 해봅니다.
20년 전의 글임에도 현대적인 문맥에서 읽혀집니다. 보편적 진리에 닿아 있는 주장이어서 그런 거겠지요. 특히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것, 관계론에 기반한 생태론적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저는 최근에 들어서 제기된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고만 있었는데, 이 글에서도 언급된 걸 보면 그보다는 더 오래 된 개념인가 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obelprize.org/nobel_prizes/peace/laureates/1989/lama-lecture.html


노벨 강의 (Nobel Lecture)

14대 달라이 라마의 노벨 강의, 1989년 12월 11일

형제와 자매들께: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있어서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세계의 다른 구석에서 온, 이렇게 많은 오래된 친구들을 보게 되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새로운 친구를 알게 되어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이들과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모두 기본적으로 닮았다는 것을 저는 상기하곤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다른 옷을 입고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표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같은 인간입니다. 그것이 우리 서로를 한데 묶어줍니다.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과 친근함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인류의 구성원으로써 대면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에 관한 저의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기로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작은 지구에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간에, 그리고 자연과 함께 조화와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꿈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우리는 매우 많은 측면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고립된 커뮤니티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행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또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단치 않은 승려로서 말씀 드립니다. 제 말이 유용하다 싶으면 실천해 보길 바랍니다.

저는 또한 티벳인들의 곤경과 열망에 대한 저의 느낌을 나누고 싶습니다. 노벨상은, 지난 40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용기를 내고 굳은 결의를 잃지 않은 티벳인들이 받아야 마땅합니다. 억류된 저의 남녀 동포들을 대신하는 자유로운 대변인으로서, 그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느낍니다. 저는, 우리 국민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고 우리의 땅과 집과 문화를 파괴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화냄이나 미워함의 감정이 없이 말합니다. 그들 또한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인간이며 우리의 자비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오늘날 저의 조국의 슬픈 상황과, 우리 국민들의 열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자유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진실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똑 같은 인간이어서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형제애와 자매애를 개발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데 그것은 곧 다른 이에 대한 따뜻한 느낌의 사랑과 자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좁아지고 있는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고 다른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남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도 헤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금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매우 분명해 졌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핵 전쟁을 하게 되면 그것은 자살의 형태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어떤 단기간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공기와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은 우리 생존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제가 보편적 책임감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한 세계 가족입니다. 세계의 한 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부정적인 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압니다. 비범한 현대 통신 기술 덕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서 일어나는 일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어린 아이들이 굶고 있을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비슷하게, 베를린 장벽에 의해 수 십 년간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다시 합쳐졌을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낍니다. 수마일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핵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의 농작물과 가축이 오염되고 우리의 건강과 살림이 위협받습니다. 다른 대륙에서 서로 적대하고 있는 편들 사이에 평화가 생겨날 때 우리의 안전이 증진됩니다.

그러나, 전쟁 혹은 평화라는 것; 자연의 파괴 혹은 보호라는 것; 인권과 민주적 자유의 침해 혹은 증진이라는 것; 가난 혹은 물질적 안녕이라는 것; 도덕적이며 영적인 가치가 없다거나 혹은 그것들이 존재하고 발전한다는 것; 인간의 이해 정도가 몰락하거나 혹은 발전하는 것, 이것들은 동떨어진 현상이 아니어서 서로 독립적으로 분석하거나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것들은 모든 수준에서 서로 많이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면, 배고픔과 추위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거의 가치가 없습니다. 양심수에게 가해진 고문의 고통을 없앨 수 없습니다. 이웃 나라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발생한 홍수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평화는 인권이 존중 받을 때라야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있고 개인과 국가가 자유로와야만 지속될 수 있습니다. 개인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진정한 평화는 마음의 평화를 개발하는 것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나머지 현상들도 비슷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깨끗한 환경이나 부유함 혹은 민주 같은 것들이 전쟁 앞에서, 특히 핵전쟁 앞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질적 진보는 물론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중요합니다. 우리 티벳은 기술적, 경제적 발전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것이 실수였음을 오늘날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신적 진보가 없는 물질적 진보는 또한 심각한 문제를 가져옵니다. 어떤 나라들은 외적인 것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내적인 발전의 중요성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저는 모두가 중요하고 함께 발전해서 이들 간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티벳인들은 외부 방문객들에게 항상 행복하고 명랑한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성의 일부입니다. 마음의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적, 종교적 가치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애정으로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것인데, 다른 모든 살아있는 유정들을 대상으로 하며 인간과 동물을 포함합니다. 내적인 평화가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내적인 평화를 갖고 있다면 외적인 문제는 여러분 깊은 곳의 평화와 평온함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서 여러분은 평온과 이성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여러분의 내적인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내적인 평화 없이는 여러분의 삶이 물질적으로 아무리 편안하다고 하더라도 외부 환경에 의해 걱정과 불안과 불행에 놓여지게 됩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현상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방법으로 이러한 다른 양상들을 고려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접근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만큼이나 심각한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된다면 거의 이득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우리는 보편적인 책임감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리적인 것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에 관해서이기도 합니다.

책임감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 국가들의 지도자나 특정한 일을 하도록 지명되거나 선출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해당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예를 들자면, 우리들 개개인에서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내적인 평화가 있을 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것들과 평화롭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커뮤니티가 평화로운 상태에 있을 때, 그 평화를 주변의 커뮤니티와 나눌 수 있습니다, 다른 것도 이런 식입니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사랑과 애정을 느낄 때, 그들이 사랑 받고 돌보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내면의 행복과 평화를 개발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사랑과 애정의 느낌을 키울 수 있도록 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우리들 중 누군가 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종교적 수행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비종교적 수행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각자가 진정한 노력을 통해 서로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연적 환경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발전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많은 나라들, 특히 북유럽의 젊은이들이 위험한 환경 파괴를 끝내라는 요구를 반복해서 했습니다. 그 파괴는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진 것입니다. 그 후에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제는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UN 사무총장에게 환경 발전에 관한 세계 위원회가 리포트(Brundtland Report)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은 각국의 정부들에게 다급한 이슈를 인식시키는데 중요한 걸음이었습니다. 전쟁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고 어떤 이들의 자결권을 실현하려는 진지한 노력으로 인해, 소련 군대가 아파카니스탄에서 물러났고 나미비아Namibia가 독립국으로 수립되었습니다. 지속적인 대중의 비폭력 노력 덕분에 극적인 변화가, 많은 나라들을 실제적인 민주주의에 좀 더 가깝게 해 준 변화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동독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냉전이 끝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이 때, 모든 곳의 사람들은 새로워진 희망을 갖고 삽니다. 슬프게도 비슷한 변화를 고국에 가져오려 한 중국인들의 용기 있는 노력은 지난 6월 무자비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역시 희망의 원천입니다. 군부는, 자유를 향한 열망과 그것을 얻으려는 중국인들의 굳은 신념의 불꽃을 완전히 끄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존경하는 사실은, 이 젊은이들이, “힘은 총의 포신에서 자란다”고 배워 온 이들이, 그 대신에 자신들의 무기로 비폭력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가 가리키는 것은, 이성, 용기, 굳은 결의, 자유를 향한 꺼지지 않는 바램이 궁긍적으로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힘에는, 한 편으로는 폭력과 압제가 있겠고 다른 한 편으로는 평화, 이성, 그리고 자유가 있을 것인데, 이들 간의 투쟁에서는 후자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우리 티벳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줍니다, 언젠가 우리도 자유롭게 될 것이라는.

여기 노르웨이에서, 멀리 티벳에서 온 특별할 것 없는 승려인 저에게 노벨상을 수여해 준 것 또한 우리 티벳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폭력에 의존하여 우리의 어려운 입장에 대해 주의를 끌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특히 모든 형태의 삶에 대한 존중과 진실의 힘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그 자치를 인정받고 응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저의 스승이신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찬사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은 많은 우리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올해의 상은 이러한 보편적인 책임감이 발전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저는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그들은 고통 받고 있는 티벳 국민들에 대해 진실 어린 걱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티벳인들 뿐만 아니라 압제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원천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티벳은 40년간 외세의 점령 아래에 있습니다. 오늘날 25만명 이상의 중국 군인들이 티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점령군의 세력이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티벳인들은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겼습니다. 몇 가지만 들어보더라도, 삶에 대한 권리, 행동할 수 있는 권리,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 종교적 숭배를 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습니다. 6백만 티벳 인구의 1/6 이상이 중국의 침략과 점령의 직접적인 결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심지어 문화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만 하더라도 티벳의 많은 수도원과 절과 역사적 건축물이 파괴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거의 모든 것들도 문화 혁명 동안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잘 보도(문서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1979년 이후 자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음에도, 수도원이나 다른 자유화의 상징물의 일부를 재건하는 것이, 티벳인들의 근본적인 인권이, 지금도 여전히 체계적으로 침해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은 이러한 나쁜 상황이 더 심해졌습니다.

망명중인 우리의 커뮤니티는 인도의 정부 및 국민들이 너그럽게 보호해주고 지원해주고 있으며 세계의 많은 곳의 기관과 개인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망명중인 우리의 커뮤니티가 아니었다면 우리 나라는 오늘날 산산히 부수어진 사람들의 잔해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 종교, 국가적 정체성은 효과적으로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망명지에 학교와 수도원을 지었고 민주적 기관을 만들어서 우리 국민을 섬기고 우리 문명의 싹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미래의 자유로운 티벳에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망명 커뮤니티를 현대적으로 개발하면서,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소중히 하고 보존하여 티벳에 있는 수백만의 남녀 동포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하게 걱정되는 것은, 중국인의 티벳 대량 이주 입니다. 점령 처음 10년 동안 많은 중국인이 티벳 동부-암도Amdo(칭하이Chinghai)라는 티벳 지방과 캄Kham(이곳의 대부분은 이웃 중국의 지방으로 편입되어 왔습니다)-로 이주하긴 했습니다만, 1983년 이래로 유래 없이 많은 중국인이 중부와 서부(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른바 티벳 자치 구역이라고 부르는)를 포함해서 티벳의 모든 지역으로 이주하도록 중국 정부가 장려하고 있습니다. 티벳인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그 수가 급속히 줄어들어서 하찮은 소수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티벳국과 그의 문화와 종교적 유산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데, 여전히 멈추고 되돌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되어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 말입니다.

새로운 일련의 항의와 폭력적 진압이 1987년 9월 티벳에서 시작된 후 올해 3월 수도 라사에 군법을 강요했을 때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대개가 중국인의 대량 유입에 대한 반응입니다. 망명지로 전달되는 정보에 의하면 항의행진을 비롯해 다른 형태의 평화로운 항의가 라사와 티벳의 여러 지역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불평을 했다는 이유로 티벳인들을 억류하고 이들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고 비인간적으로 대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다수의 티벳인들이 보안 기관에 의해 지난 3월 항의 때 죽임을 당했습니다. 억류된 후에 죽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명이 넘을 것이라 믿습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억류당하고, 체포되고, 감옥에 갇혔고, 고문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화되어 가는 상황의 배경에 맞서서 더 이상의 유혈을 막기 위해, 저는 다섯개 항의 평화 계획Five-Point Peace Plan이라 보통 언급되는 것을 제안함으로써 티벳에 평화와 인권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작년 스트라스부륵의 연설에서 계획을 상세화했습니다. 제가 믿기로, 그 계획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협상에 관해 도리에 맞고 현실적인 발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의 지도자들은 건설적인 답변을 주기를 꺼려합니다. 올해 6월 중국의 민주적 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보며 저는 티벳의 문제제기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은 적절한 국제적 보증에 의해 지원 받을 때라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5개항의 평화 계획은 근원적이면서 서로 연관된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강의의 첫 부분에 이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것이 요구하는 바는 (1) 캄Kham, 암도Amdo와 같은 동부 지역을 포함해 티벳의 전 지역을 비폭력 지대로 전환할 것; (2) 중국의 인구 이동 정책의 포기; (3) 티벳 국민의 근본적 권리와 민주적 자유에 대한 존중; (4) 티벳의 자연 환경을 복원하고 보호하는 것; (5) 진지한 협상을 시작해서 미래 티벳의 상태 및 티벳인과 중국인들 간의 관계를 다룰 것, 입니다. 스트라스부륵 연설에서 제가 제안하길, 티벳은 전적으로 자치권을 가진 민주적 정치 단위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비폭력 지대(Zone of Ahimsa)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평화의 거룩한 장소라는 개념이며 5개항 계획의 중심 항목입니다. 저는 확신하길, 그것은 티벳에게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저의 꿈은 전체 티벳 고원이 자유로운 피난소가 되어서 인간성과 자연이 평화와 조화의 균형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세계 다른 많은 곳의 긴장과 압제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로, 그들 자신 안에 있는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곳이 될 것입니다. 티벳은 참으로 평화의 증진과 개발의 창조적인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비폭력 지대라고 제안한 것의 핵심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티벳 고원의 전 지역을 비무장화 합니다;
- 핵무기를 비롯해 다른 무기들을 티벳 고원에서 제조, 테스트, 비축하는 것을 금합니다;
- 티벳 고원을 세계의 가장 큰 자연 공원 혹은 생물권으로 전환합니다. 법을 엄격히 해서 야생 동물과 식물의 삶을 보호합니다; 자연 자원의 이용을 신중하게 규제함으로써 연관된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정책을 도입합니다;
- 유해한 쓰레기를 남기는 핵의 제조 및 사용과 다른 기술들은 금지합니다;
- 국가 자원과 정책은 평화를 증진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활발히 하는 방향으로 수립합니다. 평화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고 모든 형태의 삶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들에게 티벳은 호의로운 본고장이 될 것입니다;
- 국제기구와 지역기구를 창설해서 인권을 증진시키고 보호하는 것이 티벳에서는 장려 될 것입니다.

고도와 크기(크기는 유럽 만한데), 고유의 특별한 역사와 풍부한 영적인 유산이 있어서, 티벳은, 아시아의 전략적인 마음 속에 거룩한 평화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상적으로 적합한 곳입니다. 또한 평화로운 불교국으로서, 아시아 대륙의 거대하며 때로 경쟁적이기도 한 힘을 구분하는 완충 지역으로서, 티벳의 역사적 역할과 함께 할 것입니다.

현존하는 아시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소련연방 대통령인 고르바초프가 제안하길, 소련-중국 국경을 비무장화 해서 “평화와 선의의 우호관계의 국경”으로 전환시키자 했습니다. 네팔 정부는 그 전에 제안하길, 티벳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히말라야의 네팔은 평화 지역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그 나라의 비무장화를 이끌어 내진 못했습니다만.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 지역들을 만들고 대륙의 가장 큰 힘들과 잠재적인 적들을 나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몽고에서 소련 군대가 완전히 철수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긴장을 완화하고 소련 연방과 중국 간의 잠재적 대치 상황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 지역은 분명히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두 나라인 중국과 인도를 나누도록 만들어져야 합니다.

비폭력 지대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군대와 군사시설을 티벳에서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인도와 네팔도 군대와 군사 시설을 티벳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에서 철수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국제적인 동의를 통해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아시아 모든 나라들에게 최고의 이익이 될 것입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에게 말입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높은 수준으로 군대를 집결하고 유지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과 동시에 그들의 안전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티벳이 비무장화되는 첫 번 째 전략적 지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나이Sinai 반도의 지역들,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구분하는 이집트 관할 구역은 얼마간 비무장화 되어 왔습니다. 물론 코스타 리카는 나라 전체가 비무장화 된 최고의 예시입니다. 티벳은 또한 자연 보호구역 또는 생물권으로도 최초의 지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공원이 세계에 만들어 졌습니다. 몇몇 전략적 지역들은 자연적인 “평화 공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코스타 리카 반도 국경에 접한 라 아미스타드La Amistad 공원과, 코스타 리카와 니카라과 국경에 접한 시 아 파즈Si A Paz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두 가지 예시 입니다.

올해 초에 코스타 리카를 방문해서 하나의 나라가 군대 없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평화와 자연 환경 보호에 전념하는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되는지 저는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미래 티벳의 비전이 현실적인 계획이며 단순한 꿈이 아님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은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감사를 개인적으로 언급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티벳인들의 곤경에 대해 여러분들이 걱정해주고 지원해주신 것에 대해 저희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군사무기 대신 진리와 굳은 신념이라는 강한 무기를 사용하면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할 용기를 지속적으로 얻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할 때, 티벳의 모든 국민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티벳의 모든 국민들을 대신해서 여러분들께 당부드립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이렇게 위급한 시간을 맞고 있는 티벳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우리 역시 더 평화롭고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개발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미래의 자유로운 티벳은 전 세계에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를 돕고, 자연을 보호하고, 평화를 증진할 방법을 구할 것입니다. 제가 믿기로, 우리 티벳은 높은 수준의 영적인 것과 현실적이며 실제적인 입장을 결합시킬 능력이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것이 아무리 겸손한 방식이라 하더라도, 특별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희망이자 기도입니다.

끝으로, 여러분과 짧은 기도를 함께 하겠습니다. 이 기도는 저에게 큰 영감과 굳은 신념을 줍니다.

공간이 지속하는 동안은, For as long as space endures,
그리고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은, And for as long as living beings remain,
그때까지 저, 역시, 머물러서 Until then may I, too, abide
세상의 불행을 없애게 해 주십시오. To dispel the misery of the world.

감사합니다.

by metta | 2010/06/30 12:44 | 독서 | 트랙백 |
1989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문 / 제 14대 달라이 라마
글 작성일: 2008.4.3.

달라이 라마 존자님의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문을 찾아봤습니다. 시상식을 본 적이 없어서 추측할 뿐입니다만, 아마도 시상자는 자신이 상을 받게 된 주제에 대해 공식적인 강의(Lecture)를 하고, 이와는 별도로 비교적 짧게 수상을 수락하는 연설(Acceptance Speech)을 하는 듯 합니다. 수락 연설을 우리 말로 옮겨 보았습니다. 좀 서투르긴 하지만 주요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아마도, 티벳 자유를 위한 정치적 입장은 그간 변화가 있었겠지만, 불법을 실천하는 측면에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존자님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이네요.

참고로,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obelprize.org/nobel_prizes/peace/laureates/1989/lama-acceptance.html


수락 연설 (Acceptance Speech)

14대 달라이 라마의 수락 연설, 오슬로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1989년 12월 10일

폐하, 노벨 위원회 위원들, 형제와 자매들께:

저는 오늘 여기에 여러분과 함께 있으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영광스럽고, 겸손해지고, 크게 감동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중요한 상을 티벳에서 온 대단치 않은 승려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믿기로 이 상은 이타주의, 사랑, 자비, 비폭력에 대한 인정입니다. 저는 이러한 덕목들을 부처님, 인도와 티벳의 현자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도처에 압제받고 있는 사람들,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저는 이 상을 큰 감사로 받습니다. 저는 이 상을 변화를 위한 비폭력의 실천이라는 현대적 전통을 확립한 마하트마 간디께 돌립니다. 그분의 삶은 저에게 가르침과 격려를 주셨습니다. 또한 저는 이 상을 6백만 티벳 사람들을 대신해서 받습니다. 저의 용감한 남녀 동포들은 티벳에 있으면서 크게 고통받아 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티벳의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계획된 전략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읍니다. 진실, 용기, 결의를 무기로 티벳이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고, 이 상은 그것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세계의 어디에서 왔든지간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합니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과 걱정도 같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자유를 원하고, 개인으로서 그리고 국민으로서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갖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동유럽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들은 이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민주화를 향한 대중의 움직임이 무자비한 힘에 의해 올해 6월에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시위가 헛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중국인들 사이에 자유를 바라는 마음이 되살아났고, 세계의 많은 곳으로 쓸려가고 있는 이러한 자유를 바라는 마음의 영향에서 중국이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용감한 학생들과 그들의 지원자들은 중국인의 리더쉽을 보여주었고, 전 세계에 대국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주에 많은 티벳인들이 다시 대규모의 공개 재판을 통해 최고 19년까지 감옥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것은 오늘 이 행사를 앞두고 대중들에게 겁을 주려고 의도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라고는, 사랑하는 조국이 독립을 되찾길 바라고 있는 티벳인 전체의 바램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점령 하에서 지난 40년간 티벳 인들의 고통은 잘 보도되었습니다. 오랜 투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명분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폭력은 더 많은 폭력과 고통을 낳을 뿐이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은 비폭력적이어야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국민의 고통을 끝내고자 함이지,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저는 여러 항에 걸쳐 티벳과 중국 사이에 협상을 제안한 바가 있습니다. 1987년에 저는, 티벳에 평화와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다섯 개의 항목으로 구체적인 제안 내용을 담고 있는 계획을 만든 바 있습니다. 전체 티벳 고원을 비폭적 지대로 전환해서 평화와 비폭력의 성지로 만들고 인간과 자연이 평화와 조화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계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스트라스부륵에 있는 유럽 의회에서 그 계획을 좀 더 상세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믿기에는, 제가 그 항에 표현한 방안이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도리에 맞습니다. 일부 저희 국민들이 그 안에 대해 지나치게 회유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중국의 지도자들은 우리의 제안에 대해, 그 제안이 중요한 양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긍정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재고하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티벳과 중국간의 모든 관계는 평등, 존중, 신뢰, 상호 이익의 원칙에 기반해야 합니다. 또한 티벳과 중국의 현명한 통치자들이 이미 서기 823년에 정한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둥에 새겨져서 라사 내의, 티벳의 가장 신성한 성지인 조강(Jo-Khang) 앞에 오늘날에도 서 있습니다. 이렇게 써 있습니다. "티벳인들은 위대한 땅 티벳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고, 중국인들은 위대한 땅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불교 승려로서 저는,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유정들에게까지 걱정이 미칩니다. 제가 믿기로 모든 고통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남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그들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내적인 평화와 만족에서 옵니다. 그것은 이타주의와 사랑과 자비를 키우고, 무지와 이기심과 탐욕을 소멸시킴으로써 얻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폭력적인 다툼, 자연의 파괴, 가난, 배고픔 등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제이며 인간의 노력을 통해, 형제애와 자매애를 이해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 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에 대해 보편적인 책임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비록 저는 사랑과 자비심을 키우는데 저의 불교가 도움이 되었음을 알고 있읍니다만, 종교가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사람이,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사람들 까지도, 선량한 마음과 보편적 책임의식을 개발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이 때, 종교와 신성이 우리들에게서 인간성을 일깨워 줌으로써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 간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이들 각각은 우리들에게 다른 존재에 대해 귀중한 통찰력을 줍니다. 과학과 불교의 가르침 모두는 우리에게 모든 존재 간의 근원적인 화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련된 절박한 전세계적 걱정에 대해 긍정적이고 단호한 행동을 취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제가 믿기로 모든 종교는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함을 일깨우고 모든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입니다. 수단은 다르게 보일지라도 목적은 같습니다.

금세기 마지막 10년에 들어서면서 저는 낙관하고 있길, 인류를 지속시켜온 고전적 가치가 오늘날 그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지금보다 더 애정있고 행복한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압제자와 친구를 포함해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성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모든 유정의 아픔과 수난을 줄일수 있기를.

감사합니다.
by metta | 2010/06/30 12:41 | 독서 | 트랙백 |
쿤둔 / 마틴 스콜세지
글 작성일: 2008.4.29


최근에 발생한 티벳인들의 시위와 이에 대한 중국 군부와 공안의 무력 진압을 보며, 티벳에 대한 나의 무식함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흔히 티벳 하면 영적 기운으로 충만한 신비로운 땅, 가난 속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 자기를 버리려 떠났으나 결국 자기와 다시 만나서 돌아오곤 하는 특별한 여행지, 그래서 도보 여행가와 산악인들이 특별한 동경의 장소로 마음 속에 품는 최후의 보루,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티벳의 문화와 역사 국제관계에 대해 냉정한 시각으로 본격적으로 기술한 것은 흔하지 않다. 실제 대형 서점에서 검색해 봐도 마찬가지다. 8할 이상이 여행가를 위한, 혹은 여행을 동경하기만 하는 비여행가를 위한 감상적인 책들이다. 사실 나도, 티벳과 중국의 관계를 단순히 영토 분쟁에 관련된 외교적 마찰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티벳에 관해서라면 대승불교의 지류인 티벳 밀교와 관련해 멀리서 피상적으로 갖고 있는 관심 정도가 전부였다. 마치, 우리 주변에 티벳으로 난 창은 편광 필터 같은 것으로 코팅이 되어 있어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편안한 풍경만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관점을 세우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구경꾼들의 특수한 환상 혹은 부분적 지식에 비해 그들이 일상에서 강제적으로 겪게 되는 삶의 고단함은 비할 수 없을 만치 크고 무거울 것이고, 이것들을 제외한다면 그들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우선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쿤둔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영화는 제14대 달라이 라마 성하(聖下)의 탄생, 발견, 즉위, 중국의 침공, 인도 망명까지를 다루고 있다. 티벳에서의 7년,과 달리 하인리히 같은 외부 화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티벳인들의 얘기를 서술한 식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단편적인 스케치를 했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문화와 정치와 삶의 핵심을 중국 군부에 짓밟히며 시작된 티벳 현대사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달라이 라마가 일관되게 보여준 평정심과 자비심이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는 바가 있다.

모택동이 본토를 평정한 후 중국은 티벳을 자기네로 편입시키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맞춰 단계적으로 군사적 침공을 감행한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달라이 라마는 정해진 나이에 앞서 즉위를 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어려서나 자라서나 대개가 평정심을 놓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예외적으로 고통에 힘겨워 하는 장면이 있다. 즉위를 전 후 해서 중국의 침공으로 티벳인들이 죽어나간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앉아서 불경을 넘기던 자세에서 가슴을 손으로 잡고 퍽 하고 앞으로 꼬꾸라진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나, 머뭇거림 같은 것이 삐져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짧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맑고 큰 안경 너머로 두 눈이 고통에 일그러진다. 영화에서는 그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지만, 그의 몸이 꼬꾸라졌을 때 그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졌을 것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영화를 본 지가 몇 주가 지났음에도, 주변에서 티벳과 달라이 라마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늘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르고, 덩달아 내 마음도 먹먹해 진다.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맨 먼저 객석의 양해를 구한 후 고국에서 혹은 세계 도처에 뿔뿔이 흩어져서 그의 수상 소식을 함께 기뻐하고 있을 동포들에게 티벳말로 반가운 소식을 전했는데, 그것은, 중국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그들이 싫어하는 위해를 가하지 말라고, 한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이었다고 들었다. 그때 내가 만약 티벳의 현대사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라도 있었고 시상식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면, 나 역시 많은 티벳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미움과 분노의 마음을 헤아려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용서와 자비의 마음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부처님의 가피와 세상 사람들의 간절한 바램으로, 자비의 화신께서 용서에서 오는 용기보다 평화에서 오는 행복으로 우리와 세상을 비춰줄 수 있기를, 티벳인들의 곤궁함이 덜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티벳의 평화를 빕니다.
by metta | 2010/06/30 12:38 | 영화 | 트랙백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편집자를 보니 내가 본 책인데, 그 사이에 출판사가 바뀌었나보다. 가장 자주 가는 회사 옆 도서관에 백석 정본 시집이오랫동안 대출중이어서 그 다음으로 자주 가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다른 책으로 빌려 보았다. 데카르트는 말하길 세상의 모든사람에게 이성은 공정하게 주어져 있어서 그것을 쓰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라 했는데,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보자면누군가의 이성과 감성은 연원과 과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시간이 지나도 비슷하거나 최소한 어떤 공통적인 면은 유지되는 것만 같다.멀지 않은 몇 해 전, 백석 정본 시집으로 혜윰에서 토론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책으로 다시 읽으면서도 그 때 눈에 밟혔던시들은 여전히 밟혔다. 흰 눈 나리는 벌판에서 당나귀 울음 소리를 듣다가, 가난하고 높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만들어진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하철 속에서도, 북한산 속에서도,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겨울 거리를 걸으면서도.

새로운 소득, 생각하게 된 점들이 몇 가지 있긴 했다, 예를 들자면,

- 최현배나 주시경처럼 뛰어난 한글학자도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을 주신 분이지만, 한 사람의 탁월한 시인이 얇은 책 한 권으로 남긴흔적 역시 그에 비근할 만큼 위대한 유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백석의 시를 읽으며. 한자가 조선땅을 몇백년 뒤덮으면서도면면히 살아남았던 아름다운 방언들이 고작 몇 십년간의 왜래어 범람에, 과도한 표준화에 묻혀버렸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왔다.주석 없이는 쉽게 넘길 수 없을 때가 많았던 이런 시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보배로운 유산인가.

- 시는 번역이 안된다는데, 타르코프스키 영화에 나왔던 생뚱맞은 독백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너무 세련된 혹은 너무 화려한 영어책을부여잡고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경험을 떠올리며 아무리 국어에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태생이 우리 땅이 아닌 사람이라면읽어가기 어렵겠다 싶었다. 시인은 모국어의 극한에 다다른 곳에서 아름다움 혹은 생경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니까.

- 귀전원거. 고등학교 다닐때 친구가 보내준 편지에 한 페이지 빽빽이 쓰여져 있었던 시. 옷이 젖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꿈은 젖지말기를 바랬던 도연명이 백석에게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였었구나 싶어서 반가왔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는 릴케를 느끼진못하겠지만, 중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도연명은 느껴보고 싶다.

꽤 오랫동안 쉬염쉬염 읽으며 포스트잍에 기억할만한 주제어들을 붙여놨는데, 2주 막 지나서 급하게 반납하는 바람에 메모지가 날아갔다. 아마도 한동안은 마지막으로 기억될 책읽기 일텐데, 백석의 서늘한 바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by metta | 2010/02/22 19:59 | 독서 | 트랙백 |
가족2-견습부부 / 최인호

1979-1984

저자의 생활 원칙 중에 하나는 유한한 삶에서 겸손함을 배우고 행하는 것으로 보이고,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모습을 빌려 유보적으로 표현하는 종교관에 잘 드러나 있는데, 그 점이 나에게는 설득력 있고 웅변적으로 들린다. 신실한 가톨릭이어서 가톨릭 주보에 오랫동안 연재하면서도 길없는 길과 같은 탁월한 불교 소설을 펴 낼 수 있었던 것도 위대한 성인들의 숭고한 인류애에 대한 존중과 겸손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작도 그랬지만 3가지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작가 내외는 우리 부모님과 거의 동시대의 사람이어서 내 부모가 나를 포함해 4남매를 키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대신해서 추측하며 볼 수 있고, 작가의 첫째 다혜가 1972년생으로 나와 거의 동시대의 사람이어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부모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을까 추측해서 볼 수 있고, 비록 난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했지만 부모된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를 추측해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자주 보지 못하고 있지만 한겨레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홍승우의 비빔툰처럼 때로는 가족끼리의 은밀한 내용을 소재로 삼아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너무 화목하게도 행복하게도 얘기할 수만은 없는 시대적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소설과 수필의 경계를 탄력적으로 오가는 노련함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전체적으로 그런 노력들이 성공적이었던 까닭에, 20년도 더 지난 시점에도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밝고 따뜻한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 달에 한 권씩만 아껴 읽어야 겠다.
by metta | 2010/02/08 14:23 | 독서 | 트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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